퇴사
'쉬었음 청년'의 삶
퇴사
그리운 회사 동료들
마지막 뒷모습
되돌아보니 추억이 가득
퇴사 후 맞이한 첫 아침은 생각보다 평화롭지 않았다. 늦잠 좀 자보려고 했더니, 출근 알람이 울려서 나의 단잠을 방해한 것이다! 생각하지도 못한 부분에서 퇴사를 실감하게 될 줄은 몰랐다. 알람이 울리는 시간을 2시간 뒤로 미루니 괜스레 흐뭇하다.
퇴사를 하니 갑자기 세상이 달리 보인다. 세상 근심이 사라지니 인류애가 회복되고 기근이 극복되고 지구 평화가 찾아오고 모세의 기적이 한강 물을 가른다.
반복되는 삶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 뒤에는 두려움도 있었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 모든 불안을 압도하는 해방감이 나를 반긴다. 일에 매몰되어 그동안 하지 못했던 것들을 원없이 할 것이다. 세상에서 제일 열심히 놀고 먹고 쉰 사람으로 이름을 날리겠다는 각오로 탱자탱자 놀아야지.
여행
Monet
Blue Boat House
The Pinnacles
Containbow
Freemantle
Moore River
The Pinnacles
Road trip
Elizabeth Quay
The Wave Rock
Freemantle
Perth CBD
Hangover Bay
The Wave Rock
Freemantle
여행을 원 없이 다녀왔다. 퇴직금의 대부분이 이곳에 사용되었다. 돈이란 벌 때는 어렵지만 쓰는 건 정말 물 흐르듯이 쉽구나 다시금 깨닫는다. 하지만 후회하지 않기로 했다. 돈은 또 벌면 되고 그만큼 잘 놀다 왔으니까.
호주의 퍼스는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도시’라고 불리는 만큼 고립된 환경에 위치해, 문화적으로나 자연 경관적으로나 특이한 생태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꼭 가보고 싶은 곳이었다. 미술관에 갔는데 직원이 구석을 가리키며 원하면 바닥에 앉아서 밥을 먹어도 된다고 했다. 이것이 바로 타국에서 받는 인종차별인가 당혹스러운 마음에 뒤를 돌아보니 진짜로 여러 사람들이 돌바닥에 앉아 밥을 먹고 있었다. 도시 곳곳에는 맨발로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보이니 그제야 ‘아아~ 이곳이 퍼스!’라며 탄식했다.
밤에 돌아다니기 정말 무서운 도시다. 10박을 묵는 동안 밤에 4번 시비 털렸다. 숙소 주인에게 말했더니 “걔네들이 마약 좀 하고 못되게 굴기는 해도 사람을 해치는 애들은 아니다”라면서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단다. 이야기를 더 들어보니 일본 사람들이 시드니도, 멜버른도 아닌 퍼스를 그렇게 좋아 한다고한다. 퍼스에 늘어난 일본인 인구로 인해 백인 남자들이 일본 여자들을 선호하는 경향이 생겨나자 이에 소외감을 느낀 현지 백인 여성들이 동양인에게 앙심을 품는 경우가 ‘일반화’되어 있다고 한다. (숙소 주인은 본인의 경험과, 백인 여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하니 믿을 만한 출처라고 밝혔다.) 돌고 도는 증오의 고리인가 보다.
상대적으로 맛집을 찾기 어려웠다. 구글맵에서 평점이 좋은 카페나 음식점을 찾아가면 하나같이 싱가포르 사람들이 운영하는 곳이었고, 맛은 특별할 것 없이 대체로 비슷했다. 호주가 이민자들로 구성된 국가인 만큼, 음식 문화에 있어 특출나게 현지 음식이라 내세울 만한 것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영국 식민지 시절의 식문화를 기반으로 지리적으로 가까운 동남아시아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탓에, 각국 음식을 현지 입맛에 맞춰 변형한 스타일이 주를 이룬다. 한 동네에서 세계 요리를 다양하게 맛볼 수 있다는 점은 분명한 특징이다. 딱히 당기는 게 없을 땐 대형마트에서 할인하는 로스트 치킨을 사 와 밀가루 냄새 폴폴 나는 치킨스톡 라면에 곁들여 보라. 영국에서 먹던 그 맛이 느껴져 만족스러운 한 끼를 뚝딱 해결할 수 있다. 다만 최근 호주의 특산물로 급부상한 ‘스시롤’은 여전히 먹어볼 용기가 나지 않는다.
일본도 다녀왔다. 여행 가기 한 달 전부터 듀오링고를 결제해 매일 열심히 공부했지만 실전은 역시 달랐다. 대화가 한마디도 통하지 않으니 손짓 발짓으로 소통을 했다. 반면 악명 높기로 유명한 도쿄 지하철은 서울 지하철에 익숙해져 있는 나에게 큰 어려움은 없었다. 일본 총리가 중국인 관광객들을 자국에서 몰아내면서 숙박업체들의 매출이 줄자 경쟁력 있는 낮은 가격으로 방이 풀리기 시작한 시기에 딱 맞춰서 여행을 다녀왔다.
모네 전시회도 다녀왔다. 대학생 시절, 큰돈을 주고 보러 간 서울의 모네 전시회가 알고 보니 인쇄한 캔버스 위에 투명한 아크릴 물감을 덧칠해 진짜처럼 보이게 만든 레플리카였다는 것에 배반감을 크게 느낀 것이 한이 되었나보다. 모네의 진품을 보겠다며 비행기에 오르는 사람이 세상에 몇이나 있겠는가.
콘서트
lady gaga / born this way
almost monday / jupiter
ethel cain / sun bleached flies
lady gaga / hair
좋아하는 가수들의 콘서트를 원 없이 다녀왔다. 퍼스로 향하는 비행기에서 옆자리에 앉은 수다쟁이 남자애와 친해져 서로 퍼스 여행 일정을 공유해 콘서트를 함께 보러 가기도 했다. 평소 작은 이어폰으로만 듣던 음원을 공연 현장에서 온몸으로 듣는다는 건 언제나 새로운 경험이다. 라이브의 매력은 현장감에도 있지만, 역시나 시각 효과라든지, 음원과 다르게 불리는 멜로디라든지, 악기 구성과 편곡이 다르다든지, 좋아하는 음악의 다양한 변주를 들을 수 있다는 점에 있다.
내가 밴드 음악을 좋아한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되돌아보면 역시나 음악 플레이리스트에는 밴드 음악이 많다. 15년 전 디즈니에서 밀어붙이던 음악 스타일이 팝락/밴드락이기 때문인 것은 아닐까 고민해본다. 드럼, 기타, 키보드, 보컬, 베이스라는 오각형의 조화 속에서 각 멤버의 개성이 빛나고, 음원이든, 라이브 쇼이든 어떤 무대에서도 꽉 찬 사운드를 만들어낸다는 게 밴드 음악의 매력이 아닐까 싶다.
the band camino
break me (acoustic)
i think i like you
roses
see through
hush hush
호주가 은근히 가성비가 좋다. 한국에서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영어권 국가여서 소통에 대한 부담이 적고, 오세아니아 대륙을 대표하는 나라라서 북미 아티스트들의 투어 코스에 흔히 포함된다. 특히 내가 퍼스를 방문했을 당시에 축제가 한창이어서 해외 가수들이 몰려와서 떼거지로 공연을 많이 했는데 그중에 내가 정말 좋아하는 밴드도 있었다. The Band CAMINO를 알게 된 지는 약 4년 정도 되었을까, 주로 북미 위주로 공연하는 로컬 밴드여서 아시아 투어는 가망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처음 호주로 온다는 소식을 듣고 비행기 티켓보다 먼저 콘서트 티켓을 구매했다.
공연장 입장 전, 대기 줄을 몰래 구경하러 나온 멤버들과 눈이 마주쳐 서로 웃음을 터뜨리는 순간도 있었다. 호주 사람들의 평균 신장이 커서 시야가 가려질까 걱정했는데, 운 좋게 맨 앞줄을 차지해 편안하게 즐길 수 있었다. 비록 그 자리를 지키느라 굿즈 구경은 포기해야 했지만 말이다. 밴드는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노래를 잘했다. 언젠가 또 주변국으로 투어를 온다면 주저 없이 비행기 표를 끊겠다고 다짐할 만큼 평생 잊지 못할 시간이었다.
책
생각해 보면 나는 원래 책을 많이 읽었다. 군대에서는 근무 시간에 몰래 읽겠다고 챕터별로 책을 찢어서 주머니에 넣어 다니기도 했고 휴가 때면 서점 방문이 고정 일정이었다. 책에 돈을 너무 많이 쓰다 보니 알라딘에서 중고책을 사기 시작했는데, 먼지 알레르기로 인해 마스크 끼고 온몸을 긁으면서 책을 열심히 털어댔던 기억도 난다. 라식 수술을 했을 때도 오디오북을 결제해서 눈 감고 책을 들었다. 시간도 많아졌겠다 다시금 그리운 취미와 가까워져 볼까 생각이 들었다.
사실 책에 푹 빠지게 된 계기가 된 것은 ‘해리포터’ 시리즈였다. 영화로 시작해 한글 번역판을 거쳐 영어 원서에 도달하는 과정에서 느낀 충격 때문이다. 원작이 다른 매체에서 재구성되는 방식은 신비롭기도 했지만 원문의 뉘앙스가 완전히 뒤바뀌는 지점에서는 화가 났다. 원서로 마주한 해리포터는 B급 코미디 아동용 소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출판사로부터 수십 번 거절당했다는 일화가 단번에 납득될 만큼, 모든 문장이 영국식 유머로 떡칠되어 있다. 단 한 페이지도 실소 없이 지나칠 수가 없다. 세계적인 주목을 받기 시작한 4편 이후부터는 어려운 단어를 섞으며 진지한 문학으로 인정받으려는 처절한 노력이 돋보일 뿐이었다. 어쨋거나 대부분의 창작물이 텍스트에서 파생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작가의 본래 의도에 가장 가까이 다가간 형태의 콘텐츠를 소비하기 위해선 결국 책과 친해져야 했던 것이다.
책을 이북(e-book)의 형태로 접해 보는 것은 처음이다. 이전에는 하얀 배경과 검은 글씨의 강한 명도 대비가 스크린에 번인 현상을 초래하지 않을까, 배터리 수명에 악영향을 주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기술의 발전과 함께 이런 고민은 말끔히 사라졌다. 검은 배경에 흰 글씨를 띄우는 ‘다크 모드’가 개발되었고, OLED 기술 덕분에 화면의 검은 부분은 전력을 소모하지 않게 되었다. 이제는 편안한 마음으로 이북과 친해질 수 있는 시대가 열린 셈이다.
내가 고른 책은 ‘Maurice’이다. 애플 북스에서 1달러 주고 샀다. 1910년대에 집필되었음에도 동성애 검열 탓에 1970년대가 되어서야 빛을 보게 되었다는 배경이 내 호기심을 자극했다. 미개한 과거의 인류가 필사적으로 검열하려 했던 문장의 실체는 무엇일까. 사회적 낙인을 견뎌내면서까지 작가가 집필하고자 했던 기록은 무엇일까. 최근 19세기 작품들에 빠져 있는데, 현대의 퀴어 작품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투지 정신이 느껴지기에 더욱 흥미진진하다.
“손과 심장 그리고 코”
쉬는게 뭐 어때서
인생의 이 시기쯤 오면 내 눈앞의 목적지가 좀 더 선명히 그리고 가까이 보일 것이라고 기대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실제로 마주하는 것은 먹먹함뿐이다. 나는 분명 있는 힘껏 여태껏 달려왔는데, 왜 앞은 보이지 않을까. 되돌아보면 여태 내 인생의 방향을 결정한 기준은 나의 내면에서 나온 것이 아니기 때문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부모님의 기대나 사회의 잣대에 맞춰 ‘좋은 대학에 가야 한다’거나 ‘연봉 높은 대기업에 취업해야 한다’는 것들이 내 목표인 양 착각하며 지내왔던 것이다.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묻지 않고 맹목적으로 뒤따랐던 시간들이 이제야 의문이 되어 되돌아오기 시작했다.
“이것을 모르면 도태된다”거나 “이것을 해야만 성공한다”거나, 왜 세상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결핍을 주입하는 것일까. 그리고 왜 그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스스로를 쉼 없이 채찍질하는 가학적인 태도를 왜 ‘열정’이라는 근사한 말로 포장하는 것일까. 사실 이런 것들이 모두 자기계발서와 인터넷 강의를 팔아치우려는 상술이거나, 기득권을 쥔 집단이 자신들의 ‘독점’을 정당화하기 위해 설계한 프로파간다가 아닐까. 소외의 공포 속으로 우리를 밀어 넣는 세상 속에서 우리는 어느덧 마음에 스스로 생채기를 내는 데 너무 익숙해져 버리고 말았다.
세상은 나를 ‘무직 백수’라고 부를 때, 나는 스스로를 ‘삶의 주권자’라고 정의하겠다. 엣헴. 타인이 설계한 경로에서 벗어나 삶을 즐기는 것, 그것은 나에게 단순한 나태가 아닌 자유의지의 선언이 되겠다. 나에게 인생이란, 성취해야 할 고단한 과업이 아니라 마음껏 누려야 할 공간인 것이다.
가끔은 목적지 없이 거닐며 길가에 핀 장미를 감상하는 여유가 필요해. 우리는 그저 인간이기에 어루어 만질 손과 설레일 심장, 그리고 향기를 맡을 코를 가지고 태어났는걸!